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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통무예 수박(手搏) 무형문화유산 지식사전 등재내용

사무처 2012. 8. 28. 21:35

수박(手搏)

알려진 다른 이름 ( 변(卞),  슈벽,  수박(手拍),  수박치기(수박타,  수벽치기),  수박희,  타권(打拳) )

 

수박계승자 송창렬 '나무치기'

1. 전승주체

경기도 송창렬 외[1]


2. 개요

수박은 박수(拍手) 곧, 손뼉치는 것을 의미하며, 항간에서 수박치기, 수벽치기라고 하는 것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이다. 민속용어사전에는 수박치기(손뼉치기)라 하여 고려시대의 수박희(手博戱)로 정중부 등의 무신들이 힘을 얻었던 기예가 수박치기이며 필봉풍물굿에 남아 있다. 사물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으면 그 안에서 상쇠와 잡색들이 두 줄로 앉아서 손뼉을 치는 놀이이다 라고 한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조선상고사에 송도(개성)의 수박은 고구려선배의 유풍이다. 수박이 지나(중국)에 들어가 권법이 되고 일본에 건너 가 유술이 되었다 고 하여 그 연원이 오래됨을 고증하시기도 했다. 

북한의 경우는 수박의 여러 갈래 중 수박춤과 수박놀이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박의 주변, 유사문화로는 살판의 발바닥치기 , 軍物(농악)의 수박치기, 진도 강강술래 중의 손치기, 북한의 발춤(지난날 함경도 단천지방에서 무사들이 싸움터에 나갈 때와 이기고 돌아 올 때 추던 것이라고 한다), 개성지역의 박판춤(투박하게 내리 누르며 비비는 발 동작, 두팔을 벌리고 어깨를 크게 놀리는 어깨춤 동작, 가슴과 어깨를 치는 동작 등이 특징적이라고 한다)등이 남아 있다.  

함경남도 북청군 이곡면 초리가 고향인 송창렬(1932~ )은 1940년대 초에 경기도 개성(松都)에서 수박을 전수받았다. 근대 이전(1910년대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조선 정조때의 재물보에 '슈벽'등으로 기록되기도 함) 지역적으로 특색을 가진 민속 체기, 무예로 발전·전승되던 중 개성을 중심으로 전해지던 수박치기의 경우 그 기능자였던 천일룡(생존시 110세 정도가 됨)이 송창렬에게 전수한 바 작금에 사단법인 대한수박협회에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수박(치기)은 역사성, 전통성과 학술성 및 향토적 특색을 인정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한국의 전통무예로서 그 맥이 끊어질지 알 수 없어 보존과 전승에 시급한 조치가 필요한 지경이다.
일제강점기 까지만 해도 평양의 날파람, 박치기 외에도 함경도의 주먹치기와 개성의 수박치기, 서울 택견 등이 유명했다. 개성의 남산 근처 남문통(시장) 주변에는 당시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개성상인패들이 즐비 했는데 이들이 호신용으로 익히던 무예(술), 여가를 활용 해 즐기던 씨름에 비슷한 놀이로서 수박이 이어져 왔다. 기능자인 송창렬의 증언에 의하면 상인집단에 주먹을 주로 쓰는 건달들이 속해 있었고 평소 앙금이 있을 때 정월이나 특정한 날을 잡아 결투를 하기도 했었는데 자신이 배운 것과 매우 흡사했다고 한다. 개성사람들은 근대까지도 개성(송도)를 중심으로 서울이었던 한양도 '내려간다'라던 자존심이 있었고 '개성상인 건드리면 죽는다'는 속어도 이런 배경으로 나왔다고 짐작한다. 근래에 알려진 택견의 경우 이 수박이 분화 된 예가 아닌가 하는 학계의 의견이 있는데 택견이 서울에 국한되어 행해지던 것에 비해 수박의 경우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안도 날파람기술에도 영향을 준 한국무예의 본류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불과 반세기전만 해도 개성을 중심으로 찾아 볼 수 있었던 이 기예가 해방과 전쟁 등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우리민족에게서 멀어져 감은 안타까운 일이다. 


3. 전승내용

[전승]
송창렬은 일제강점기 부유했던 부친 덕에 일본인소학교를 다녔는데 그 때부터 일본인 학생들에게 조센징'이라며 뭇매를 맞았다고 한다. 그것을 기회로 10세(1942년)부터 개성의 여우골과 홍삼정 뒷뜰, 고려 만월대 등에서 부친이 경영하던 주물공장의 십장(공장장)이었던 천일룡(개성시 남문통 거주)에게 수박을 배웠으며, 이듬해 일본인학교에서 일본아이들과 싸움질을 하고 말썽이 나 근처의 조선인학교였던 만월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수박은 주로 손을 사용하여 상대를 공격하고 넘어뜨리는 한국 고유의 무예이다. 2007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신청 된 바 있다. 이칭으로는 (변(卞), 슈벽, 수박(手拍), 수박치기(수박타, 수벽치기), 수박희, 타권(打拳))이 있다. 고려사(高麗史)에 수박이라는 용어가 처음 보이지만 언제부터 우리민족이 수박을 했었는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고려사에 수박(手搏) 또는 수박희(手搏戱)라고 표기 했으며 조선시대의 기록에는 수박(手拍), 슈벽, 타권(打拳)으로도 나타난다. 민간에서는 수박치기(수벽치기라고도 함)라고 흔히 통용되었었다. 조선 후기의 문헌인재물보(才物譜)를 보면 手搏의 우리말이 '슈벽'인 것을 알 수 있으며(수박(手搏)의 한글표기는 적어도 18세기 이전까지‘수벽’이었다. 지금의 사전적 정의(定意)는 ①손바닥 ②두 사람이 서로 보고 앉아 손바닥을 마주치는 장난이다)
1921년에 간행 된 해동죽지(海東竹技)에는 수벽치기라하여, 아이들의 놀이쯤으로 치부되던 손뼉치기가 원래는 장사들의 무예에서 비롯된 것임을 증언하고 있다. 송창렬은 자신이 배울 당시, 스승이었던 천일룡이 '수박타'라고도 했다하며 이는 수박치기가 손뼉을 치는 동작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에 그리 된 듯하다. 문화재위원을 지내셨던 故 예용해 뿐 아니라 권태훈(1900 ~ 작고)도 자신의 저서에서 어릴 때 보았던 수박이 서로 마주보고 상대방의 손바닥을 서로 치고 소리도 곁들여 한다고 한 바 있다. 오진환옹은 제1회 서울시생활체육 전통무예대회에서 "송창렬이 하는것은 자신이 민완식으로부터 배운것과 동일한 것"이라는 증언을 마지막으로 2002년 돌아가셨다.
송창렬은 수박 외에도 민간에서 전래되어 오던 함경도근방의 검무(劍舞)를 재현 할 수도 있다. 수박의 기능자로는 송창렬, 명성황후 조카이셨던 반공투사 민완식 선생으로부터 사사받은 오진환(1919 ~ 2002년 졸)과 함경도 단천출신으로 현재 중국길림성 거주의 김학현 일가가 있으며 국 내,외의 계보와 기능을 모두 계승한 이로는 송창렬의 자제인 송준호가 유일하다.

[유래]
고구려 고분벽화에 유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무용총(舞踊塚) 벽화에는 두 남자가 마주서서 수박의 견주기 동작을 취하고 있는 그림이 있다), 삼실총(三室塚) 벽화에는 수박의 제몸치기 동작이 활달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신라에서도 유사한 신체활동을 볼 수 있는데 경북 경주 석굴암 입구의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수박의 주먹질 막기와 견주기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라든지, 분황사(芬皇寺) 층탑(層塔) 출입문 좌우에 부조된 인왕상(仁王像)의 수박 자세는 신라 수박의 면모를 보여주는 유적이다. 동국여지승람의 백제의 옛 땅이었던 전라도와 충청도의 경계인 작지(鵲旨)마을에서 조선시대에 양도의 사람들이 모여 수박희를 행했다는 기록을 통해 백제 수박의 유풍도 짐작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는 고려사에서 수박(手搏)이나 수박희(手搏戱)라 기록하였고, 이의민(李義旼)과 두경승(杜景升)이 수박을 하는 구체적인 장면도 등장한다. 조선에서는 수박이 법률로 무과시취(武科試取)의 과목이 되기도 하였으며(세종25년(1443) 11월), 세조때는 노비(奴)들까지 나라에서 수박으로써 시재한다는 말을 듣고는 서로 모여서 수박으로 용사들을 뽑았었다. 고려 형법지(刑法志)에 현상금을 걸고 박투(搏鬪)할 때의 기술이 수박이었다 하는데 법(法)으로 엄금(嚴禁)했던 수박(手搏)이 요즘처럼 손바닥이나 치고 노는 유습에 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잘 만하면 벼슬길도 열리는 무예였으며, 무인(武人)의 특기였다. 위력적인 것 또한, 정사(正史)가 잘 말해 주고 있다. 조선에서 민간으로 널리 퍼진 수박이 노비나 중들의 원수갚음에 사용되기도 했었지만 자고로 호란이나 임란 등 적의 침입에 분연히 맞선 우국, 호연지기도 있었다.
수박은 손바닥을 서로 치며 노래를 곁들여 틀린 경우에 벌을 받는 경우와 상대와 마주 서서 양손바닥으로 쳐, 넘어뜨리는 두가지 방법이 알려져 있다. 근대이전에는 돼지씨름이라 하여 마주보고 선 상대를 밀어 넘어뜨리거나 잡아 당겨 엎어지게 하는것도 더러 했었는데 수박의 부분적인 연습법이 민간에 전해지며 씨름이라는 이름이 차용된 것이다. 이런 예는 아직까지도 주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손뼉치기가 무술에서 비롯된 것이란 증거는 상대의 뒷목을 끌어 당겨 손가락으로, 쎄게 치면 벙어리가 된다는 아문'혈을 짚고 알아 맞춘다던지 상대의 등을 양손바닥으로 번갈아 치거나 덜미를 잡고 어깨죽지를  팔꿈치로 치는 것들에 남아 있다. 그 밖에 차력의 기합술과 민간신앙에서의 비손'을 통해 기를 모으고 풀어내는 법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잘하는 경우에는 손으로 돌을 깨기도 하고 소뿔을 뽑기도 했다 한다.

[중요성]
수박은 맨손무예의 보통명사가 아니라 일정한 틀을 가지고 지금의 압록강유역을 중심으로 고구려와 발해 그리고 후에 그 유민들이 전승, 향유 해 내려오는 기나긴 역사성과 전통성, 학술성, 향토적인 특색을 인정 할 수 있는 순수한 전통기예, 몸짓문화이다. 또한, 본 모습을 잃지 않고 이 시대에 전해 진 소중한 표현양식으로서 다분히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원시성에 기반한 무형의 무예유산이다. 수박을 소중히 지켜가고 널리 알려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수박은 상무정신과 진취적 기상을 함양하는 몸짓문화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민족화합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 민속, 체육적으로 큰 의의가 있으며 손을 주로 사용하기에 자라나는 아이들의 지능향상과 노인들의 양생과도 연관이 적지 않음은 선조들의 지혜가 수박에 내재되어 전해짐을 의미한다.


4. 주요특징 및 보호방법 제안

수박에는 무예(武藝)적인 박격(搏擊)뿐 아니라 무용(舞踊)으로서의 수박춤과 유희(遊戱)적인 수박치기가 존재한다. 즉, 무(武), 무(舞), 희(戱)를 포괄하며 행위자의 목적성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되어진다. 수박의 동작에 몸짓을 첨가하게 될 때 수박춤이란 무용이 되며 앉거나 서서 이마치고, 뺨 치고 등의 입장단을 곁들이거나 상대방과 손바닥을 마주치며하게 되면 어릴 때 한번쯤 해봤음직한 손뼉(수박, 수벽)치기가 된다. 수박의 틀에는 제몸치기, 상대몸치기, 어깨치기 등이 있으며 이들 순서대로 각 동작들을 체화(體化)하는 것이 필요하다. 팔짱을 끼거나 허벅에 손을 올려두고 무릎과 상체를 숙였다 폈다하는 '절구질'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 상당한 근력과 지구력 같은 체력적인 것을 요하는 둔탁하고, 투박한 장사(將士, 체격과 힘이 크고 강한 사람)들의 몸짓 이었다. 수박의 체(體)는 절구질이다. 체는 본질적인 것을 말하며, 용(用)은 쓰임새, 작용, 역할 등을 일컫는다. 體와 用을 화엄사상(華嚴思想)에서는 이리 말한다. 의상조사 법성게(義湘祖師 法性偈)에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하나에 모두가 다 있으며 모두에 하나가 있으니, 하나가 곧 모두이고 모두가 곧 하나이다. 한 티끌에 우주를 다 머금고, 낱낱의 티끌이 다 그러하다)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박의 각 기술들(신호등)은 절구질이라는 체(교통체계)를 바탕으로 운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체계 속에 들어가 있을 때 비로소 수박다운 의미와 고유성이 잘 드러나게 된다. 절구질 없이 무턱대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이다. 수박에는 타 무예종목의 품새(투로, 카타)와 같은 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박을 박격(搏擊)적인 것에 국한해서 이해할 때는 단순하지만, 사실적인 동작들을 혼자, 마주보고 연습한 뒤에 실제적으로 써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가 옛 사람 들에겐 더욱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이외에 몸짓거리, 장단치기, 일정부분 정형화 되어 있는 수박춤 등의 무용적, 유희적인 요소들이 위의 술기들과 맥을 함께하며 혼재되어 있다.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수박을 직접 수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생존해 있었다고 하며 장사들이 자기 몸을 손으로 쳐 대며 수련하던 격렬한 투기였기에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경기화로 발전되어지지 못하고 그 수련방법인 손바닥치기가 지금까지 전해지며 '손뼉치기(북한에서는 수박치기라고 함)놀이로 변전 된 듯하다. 수박은 일본으로 전해져 일본국기인 스모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조선통신사가 전해 준 무용이라 하여 스즈카 지방에서 연희되는 것에도 수박의 동작과 같은 것이 여럿 보인다. 송창렬은 붙 잡고 받아 버리면 끝난다 라고 하니('맘이 안 맞으면 들이받고 봤다'(함경도)는데 지척인 평안도박치기도 따지고 보면 연관이 있을 것이다. 수박에도 박치기가 있다) 그 겨룸이 보통 격한것이 아니었을것으로 짐작된다. 경기화가 되지 못하고 아이들의 놀이로 전해지는 배경이 이해되는 것이다. 손 기술을 외우기 위한 방법으로서 “잡놈 지랄 떨지마”라는 두문자가 전해진다. 이는 조선말까지 전승되어 오던 민간의 수투불림적인 성격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박은 민속무용인 수박춤과 함께 2007년 문화재청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신청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우리역사가 왜곡되고 전통문화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택견이 80년대 문화재로 지정된 뒤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고 머지않아 씨름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이와 같은 중차대한 시기에 수박을 홀대하지 않고 무형문화유산으로 국가에서 지정, 보호, 육성하는 등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5. 주요경력

송창렬은 1942년에서 1950년까지 천서방(천일룡)으로부터 수박, 무당춤 등을 사사받았다. 그의 주요 경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53년 단국대학교 정치학부 2년 중퇴, 2001년 사단법인 대한수박협회고문, 국민생활체육서울시전통무예연합회 고문, 제3회 대한민국전통무예제(국립극장대극장) 수박지도, 2002년 제1회 전통무예대회 시연, 공로표창 수상(서울시 생체협회장 문일권).
각종 세미나 주제발표에서 수박원형으로 소개 되었다. 예를 들면 미국 아틀란타대학교수 범기철, 충북진천군 배달국무연구원 논문에(송도)수박기능자로 소개(발표; 경기도검도회장 김재일), 2003년 동아일보에 "한국 내 유일한 수박보유자"로 소개되기도 했고 프랑스 소재 "세계태권무도아카데미" 총재 초청대담, 2004년 "올 어바웃 태권도" 영문판에 수박계승자로 소개, 택견예능보유자 초청대담, 2005년 '전통무예간담회' 공로패 수상(문화관광위원회 의원 강혜숙), 2007년 수박(무예부문)으로 국가지정무형문화재 지정신청, 2008년 4월 14일 국립문화재연구소 현장조사시 증언, 시연, EBS 교육방송과 KBS, SBS 스포츠와이드, 아리랑 TV 출연 시연, 2009 헤럴드경제선정 전통무예진흥대상 수상, 뉴스메이커 대상수상 등으로 수박을 알리기도 했다.


각 주
전승 지역
        경기  기타    
분류 체계
        전통적 놀이ㆍ축제 및 기예ㆍ무예 /  무예 /  수박
무형문화유산 아카이브 용례
1 . 옹기장(전북 고창 배남기, 배용권) ,『옹기의 색은 바탕흙의 재료, 소성방법과 유약을 입히는 경우 유약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바탕흙에 포함되어 있는 산화철의 양이 큰 작용을 하는데 철화합믈은 산화성 불에는 갈색이나 붉은색, 밤색 계통의 색을 내며 환원성 불에서는 푸른색 계통의 색을 낸다. 특히 유약 속의 산화철은 산화성 불에 의해 황색유가 ..』, 정성미 , 2011-09-19
2 . 연등축제(서울) , 문화재청, 한국민속학회 , 2010-12-13
자료 출처 / 참고 자료
1 . 사)대한수박협회 홈페이지 (http://www.soobak.org/)
저 작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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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박보존회
글쓴이 : 수박삼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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