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민족정통氣수련 도학)12월 무료수련 알림입니다.

사무처 2012. 12. 5. 17:39

비손과 기차(호흡수련) 무료수련

 

구한말의 차력인물

 

1)해공선생

 

[국회보 2011년 5월호] “못 살겠다, 갈아보자” 신익희 후보 서거

1956년 5월 3일 한강 백사장에서 열린 신익희 후보의 정견발표에 모인 40만 군중(사진 위)과 국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 운구행렬(1956.5.23).

1956년 5월 5일 호남 유세 중 심장마비로 급서

 

돌이킬 수 없는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가정의 역사가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염원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헌정사에서 ‘그때 그랬더라면…’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었을 법한 아쉬운 대목이 한둘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사건 중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 신익희 대통령 후보의 서거일 것이다. 1956년 5월 5일 신익희 후보가 호남지역 유세 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향년 6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올해는 서거 55주년이 되는 해다.

 

60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제헌헌법의 기초와 의회제도 확립에 커다란 공헌을 했던 정치 지도자 해공 신익희 선생은 갑오경장이 일어났던 해인 1894년 6월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만 22세이던 1916년 일본의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이듬해 보성전문학교 교수가 되어 후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해공의 이력 중에는 24세에 계룡산 신도안에서 도사 박해봉에게 도술과 차력술을 습득했다는 특이한 대목도 있다. 이는 차력술과 신통력을 얻어 일제를 깨부수고 의병을 일으켜 국권회복에 나서기 위한 신체단련으로 보인다.

 

 

2)길선주목사

1869∼1935. 장로교 목사.

 

자는 윤열(潤悅), 호는 영계(靈溪). 평안남도 안주 출신. 아버지는 봉순(鳳順)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워 시화에 능했고, 음악을 좋아했다.

 

힘이 장사였던 그는 19세부터 차력술을 연마하던 중, 25세 때 친구로부터 선도(仙道)로 장사가 된다는 말을 듣고 입산하여 3년을 힘썼으나, 신통한 것을 얻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이때 자기에게 선도를 권했던 김종섭(金鍾燮)을 만나, 그로부터 기독교에 입교하였다는 이야기와 그가 권하는 한문 기독교 서적들을 읽었다. 특히 ≪천로역정 天路歷程≫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차력은 '영적 집중'으로 내공수련의 하나

인간읜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한때 무예의 세계에서 단골시범으로 등장하는 차력(借力)은 사회적 비판으로 수십년간 외면되어 왔다. 나이트클럽이나 행사장에서 눈요기 거리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를 체계화한다거나 정립하는 과정도 없었다. 이에 필자는 차력의 세계와 관련련한 해방이후부터 지금까지를 살펴보았다.

 


내공의 표출방식 차력술(사진은 격파장면)

차력은 사전적 용어로 "약이나 신령의 힘을 빌려 몸과 기운을 굳세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영어로는 'spiritual concentration'이라고 해 '영적 집중'으로도 표현한다. 이러한 차력의 본 의미가 있음에도, 우리사회에서는 아직도 마술쇼와 같은 것 아니냐는 편견으로 바라본다.

차력의 사회적 인식은 1970년대 '차력술'이라고 해 외적인 능력표현으로 흥행된데서 출발한다. 그 이전에도 차력의 수련법은 있었지만, 1970년대 차력술이라는 이름으로 무예인들이 하나둘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 알려졌다. 이 시기 무예계는 해방이후 대한체육회에 유도, 검도, 태권도가 가맹되면서 나머지 무예들은 외면당하던 때이다. 이런 와중에 제도권이외의 무예들이 전통무예의 비기(秘技)와 '안보무술'이라는 이름으로 융합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차력술은 국민들로 하여금 무예의 신비감을 보여주는 계기를 불러왔다.

1970년대 초, 현재 대한유술협회 장만철회장이 29세때 당시 대한차력운영회 소속으로 공중비행검술로 인기를 모았고, 어린이날 단골시범을 보인 무궁화차력단의 박성권, 그리고 과학기술처에 근무하고 있던 최동섭이 1974년에 종로구에 차력무술도장을 개관하기도 했다. 1975년 당시 감사원 동홍욱 총장도 맨손으로 못을 박는 차력의 보유자였다. 이런 차력의 흥행으로 차력영화 시리즈가 기획되는 등 차력의 세계는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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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의원을 하시는 분이 연락을 하셨다.

 

동학사상과 도학에서 실시하는 교육에 참여를 하고프다 하신다.

 

12월 늦게 한국에 들어 올 일이 있는데,,, 그때 교육을 받을수 있느냐는 요지였다.

 

비손과 용력술에 관심이 있다시고

그러면서도 반신반의하는것 같았다.

 

비손이란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이 장독대에 물 한그릇 올려두고 일념으로 염을 하던것을 이른다.

 

무가에선 비념이나 손빔으로도 불리운다.

요즈음 보살집에서도 부처상을 놓고 절을 하고 하던데,,, 그건 옳지 않다고 본다.

 

원래 우리네는 신에게 절을 하지는 않았다.

절이란 공경과 존경의 의미이니 유가쪽에서 들어 왔지 싶다.

 

신을 대할땐 두손을 마주대고 흡사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란 식으로 비비는것이 비손의 원형질이다.

 

거기에서 파생되어진 수련법이 전해져 오는것이고,,,

 

신과 인간의 매개를 신단수가 하지 않고 이때는 손이 하는것,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때 칠성을 부르고 삼신을 찾게되니,,, 민족정신문화의 원형이 숨어 있는게지?

 

우린, 북두에서 왔다. 그런 민족이라는 관념이 고대국가에서부터 전해져 온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별자리를 봐도 북두칠성이 신성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차력이란 것도 70년대에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쇼'적인, 보여주는걸 많이 하다보니 터부시되고 있는데,,,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인게다.

 

신차까지 하게되면 영계를 다룰수 있게 된다.

 

필자가 이런 말 한다고 딴죽 거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 실체를 알기전까진 나부터가 도외시했던게다 ㅎ

 

알고 나면 부정할 수 없게된다.

 

 

 

 

 

 

[교육과목]

 

비손과 용력술/ 기차(호흡수련),신차,산차 외

*흔히 수차란것도 있으나 이는 산차에 포함되는 지엽적인것에 불과하다.

 

일시/ 12월 세째주 일요일(16일) 오전 10시부터~

장소/ 민족정통기수련 道學 중앙도원(수박보존회 사무국)

부산시 중구 부평동 1가 23-15 (정확한 위치는 전화 문의로)

 

(지도자교육에 참여하러 지역에서 몇분이 오시기에 일반교육은 첫회(16일)는 기차(호흡)과 용력술 기초에 한합니다.

이후 1, 3째 일요일 수련을 하러 오시면 됩니다.

 

교육비/ 지도자교육으로 지회개설을 조건으로 할 때 사무실로 문의

- 기학 외 영성까지 해야 가능해 집니다.

일반수련은 신차와 영성을 하지 않습니다.

 

수련비/ 이번 기수에 한하여 면제함(총 3개월, 6회, 12시간임)

 

 

민족정통기수련 도학, 사단법인 대한수박협회 알림

 

출처 : 민족무예 수박보존회
글쓴이 : 수박삼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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