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블로그 <연화사인검>이란 곳에서 관련글을 읽어
링크를 겁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일차 방문하셔도 무난할듯합니다.
http://blog.daum.net/sajutarot/15280684
///도학 제자분들은 위의 논거에 치우치진 마세요///
도사???
무시합니다.친가, 외가니,,, 몇대조니 등등
산신이 도줄인가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불교경문에 해박하지 않은지라
거기에 대한 논박을 차치하고
삼보라하여 귀의 운운하는
불교계의 겉멋 들은 모습과 작위에 혐오감마저 느끼고 있는 이입니다.
물론, 형식적인,, 또는 사람을 보고 가는건 아닙니다만,,,
물고기가 있습니다.
필자가 금붕어를 몇마리 키우는데 ㅎ
이넘들 수도 짧지가 않더군요.
3마리는 3년이 가까워지고,,,
새끼 3마리는 사 온지 두어달 되어갑니다.
눈치 코치 없는게 없네요? ㅎ
저작년 겨울에 3층 수련원에 뒀다가(아주 추울때 영하로 떨어진 날이었어요)
집에 다녀와서 올라가니
개들을 담아 둔 장독대 뚜껑 속의 물이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속으로,,,
"이넘들 죽었나???" 하고 긴가민가해서
얼음을 깨 보니
곧장 꼬리를 치지 않겟습니까?
그 뒤부터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
*사실, 훈련이라기보다는 괴롭힘이죠.
한마리씩 뭍으로 끌어내어 손가락으로 머리 때리기???
입에 손가락을 들이밀어 얌얌??? 시키기 등등
꼬리를 잡고 거꾸로 세워 흔들기에 더해서 지들끼리 뽀뽀 시키기도 메뉴에 들어갑니다.
(완전 금붕어네 놀보가 따로 없는게죠)
그러며 알게된건데 이넘들 머리가 보통이 아니더군요.
밥 줄때는 서로 먼저 먹으려고 꼬리치고 아우성이 장난이 아닙니다.
처음엔 손으로 잡으니 반사적으로 도망가고 했는데
지금은 니가 그럴려면 해라??? 식일때도 있고
저와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그넘들 생각이 일부 읽히기도 해요.
(이거 구라 아니랍니다)
신줄 얘기하다가 딴 얘길 하고 있네요? ㅎ
금붕어와 갈치가 다 같은 물고기랍니다.
근데,,,
같을까요?
아닙니다.
금붕어와 갈치,,, 이들은 씨가 다른겁니다.
씨는 공부에 있어 얼을 의미하는것으로써
다른 씨를 받을수도 없고 받아서도 안되는 이치를 알아야합니다.
부처(석가) 피를 수혈하면 산사람도 죽는답니다.
배울점이 있다는것과 그 씨를
(혼이니 령이니 하지만 알고보면 정신이라는 그릇 속의 얼이 그것인게죠)
받는다는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같지 않은겝니다.
예수가 태어나기 2333년전,,, 석가의 깨우침 이전에 가르침이 존재했습니다.
단재께서 말씀하신데로 역사를 모르면 노예민족이 되고 엽전이 되는것이니,,,
황금불상에,,, 현혹되진 않아야 합니다.
그것에 오줌을 누고 똥을 쌀 수 있어야 비로소 제데로 된 공부를 시작할 수가 있는거에요.
씨를 따라 거슬러 가다보니 핏줄이란게 떡!~ 하니 나타나더군요.
어! 이런거 필요없어! 나는 도만 닦으면 되? 하고 토굴에 들어 앉아 있어보니,,,
길이 보이지를 않앗답니다.
당연한게죠.
탯줄을 타고 누천년 이어져 온 그 선천의 기운을 나라는 넘이 어찌 부정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단군,단군 하니,,, 이상하지 않은것이 되려 이상 해 보이는것이지,,,
도에 귀의하고 거기서 비롯된 할아버지께 의탁을 해야 길을 잃지 않는답니다.
우리가 잡아야 할 도줄은 이것밖에 없는겁니다.
다행히 그분의 가르침이 신고로 전해지고 있으니,,,
하느냐 마느냐의 선택만 있을뿐인게죠.
부언하여 관념은 관념일뿐이니 실체공부를 해야한답니다.
말로 떠들어 봐야 증명할 수도 없는것들인데,,,
시간낭비인게죠?
필자는 마음공부니 이런류를 아!~ 주 싫어합니다.
석가가, 공자가,,, 지저스가 30도 안되어 깨친것을
누구는 죽을때까지,,, ??? 그럴 이유가 전혀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스스로 종 되는 이들은 종으로 살다가면 되는것이고,,,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신앙사전(무속신앙 편)
산신
[ 山神 ]
1. 산신도 원본보기
- 분야
무속신앙 > 무신
정의
한국의 대표적 마을 수호신으로 산에 있으면서 산을 지키고 담당하는 신령. 자연물에는 그것을 지배하는 정령이 있다는 애니미즘(animism) 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 일종의 산의 정령이다. 신체(神體)는 호랑이 또는 신선의 상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기록을 비롯하여 견훤의 사위 박영규(朴英規)가 해룡산신(海龍山神)이 되었다거나 박난봉(朴蘭鳳)이 인제산신(麟蹄山神)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사후의 인간이 산신이 되었다는 관념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역사
한국에서 산신신앙은 수렵문화 단계에 이미 출현했다. 이때 산신은 산의 일체를 관장하는 자연의 주인(master of nature)이다. 신체(神體)는 호랑이였는데, 동예의 호랑이신 숭배는 이러한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단군이 마지막에 아사달 산신으로 좌정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고조선 시대에도 산신신앙이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산신신앙은 신라에서 특히 성행했고, 신라 국가제사의대상 대부분이 산신이었다. 이는 산신이 국가를 수호한다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었고, 그래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산신이 나타나 이를 경고하기도 했다. 신라 49대 헌강왕이 포석정이나 북악에 행차했을 때 3산 5악의 신들이 나타나 춤을 추면서 다가올 위기를 경고했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고려시대에는 산신들에 대해 수시로 봉작을 내려 산신의 가호를 빌기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중요 산악들을 국가의 제사대상으로 삼아 정기적으로 제사했다.
한편 불교가 수용되면서 전통신앙과 불교의 혼합이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산신은 사찰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는다. 그래서 사찰마다 산신각을 지어 산신을 모시게 되는데, 그 시기는 대략 조선 후기로 짐작된다.
내용
산신에는 남성과 여성이 있다. 산신에 관한 최초의 기록인 단군신화에는 단군이 산신으로 좌정했다고 하여 한국의 산신은 원래 남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대의 기록에서 대부분의 산신은 여성으로 나타난다. 신라 선도산(仙桃山)의 산신, 영취산(靈鷲山)의 산신, 김유신을 보호했다는 신라 3산의 산신은 모두 여성 산신이다.
이뿐만 아니라 고려 건국설화에 나오는 평나산(平那山)의 산신도 여성이다. 그러나 고려시대로 오면서 산신의 성은 대부분 남성으로 바뀐다.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 산신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는데, 지리산의 산신은 지금도 여성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공주 동학사에서 모시는 계룡산신도 여성이다. 여성 산신의 전통은 산 이름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할머니를 뜻하는 ‘노고(老姑)’라는 산명이 전국에 산재한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한편 고려 시대를 전후하여 남성 산신이 산신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는데, 현재 남아 있는 산신도에는 산신이 남성으로 묘사되며, 이와 함께 산신에게 처녀를 바치는 풍습도 생겨난다. 개성 덕물산이나 나주 금성산 산신에게 처녀를 바치는 풍습이 그것이다. 이러한 산신의 성(性) 변화는 사회가 남성 중심으로 바뀌어 간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산신의 거처는 산정형(山頂型)·중복형(中腹型)·산하형(山下型)이 있다.
① 산정형은 산정이 하늘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산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산의 지배자가 군림하기 알맞은 곳이다. 그래서 흔히 산정에 산신이 거처한다고 하여 산신을 모시는 제단이나 제당을 산정에 마련하여 산신에게 제사한다.
② 중복형은 산 중턱이 찬바람을 막고 따뜻한 햇볕이 드는 이상적인 곳이므로 여기에 산신이 거처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산정은 올라가기 힘들어 인적이 뜸한 데 비해 중턱은 사람들의 내왕이 활발하고, 그 때문에 호환(虎患)을 당하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아 산 생활에서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여기에 제단이나 제당을 마련하여 산신을 모시는 형이다.
③ 산하형은 산 아래 빛이 잘 드는 곳, 또는 마을에서 산으로 들어가는 등산로 근처에 제단이나 제당을 만들고 산신에 제사하는 형이다. 산도 아니고 평야도 아닌 그 중간지점에 산신당이 있는 것은 산신이 그만큼 농경지로 내려온 것인데, 이것은 곧 산신이 산악의 신이나 수렵의 신에서 농경 신으로 그 역할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산하형은 마을에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마을 주민들의 모든 소망을 기원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풍작뿐만 아니라 치병, 기자(祈子) 등을 산신에게 빌기도 했다.
산신이 머무는 곳으로 간주되는 제당에는 토단(土壇)·석단(石壇)·거수(巨樹)·당우(堂宇) 등이 있다.
① 토단형은 산정에 위치한 경우가 많으며, 외형은 둥근형과 사각형이 있다.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둘레에 떼를 입힌다. 높이는 1척, 면적은 3m² 정도가 일반적이다. 산신 제당 가운데 가장 오래된 형태로 추정된다.
② 석단형은 돌을 쌓은 것으로, 자연석으로 쌓은 것과 가공한 석재로 쌓은 것이 있다. 산 속에 있는 것은 대개 자연석으로 축조하는데, 마을에 가까울수록 인공 석재를 이용한 것이 많다. 또 시기적으로는 자연석으로 쌓은 것이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③ 거수형이란 큰 나무가 있고, 그 옆에 제단을 두어 산신을 모시는 형태이다. 단군신화에서 웅녀가 축원한 장소로 전하는 신단수(神壇樹)도 거수형에 해당한다. 거수형은 마을 입구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고, 마을에서 모시지만 산중의 거목을 신목(神木)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단이나 당이 있는 곳은 신성한 구역이라 나무를 베지 않기 때문에 나무가 거목으로 성장한 것이다. 먼 데서 보면 산정 또는 산 중턱에 거목들이 우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 산신이 있다고 여겨 산신제를 지내는 경우가 많다. 이 유형은 신목신앙과도 연결되는 것으로, 산신의 신앙 형태로는 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④ 당우형은 산신을 건물 안에서 모시는 유형이다. 존귀한 산신이 비바람을 맞는 것을 황송하게 여겨 건물을 짓고 그 안에 산신을 모신 것으로, 비교적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당우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지만 3m² 정도 되는 단칸집이 많다. 당우에는 토단형·석단형·거수형과는 달리 산신상이나 산신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산신상에서 산신은 백발에 긴 수염을 가진 노인으로 묘사되며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랑이는 원래 산신 그 자체였으나 산신이 인간화되면서 산신의 사자 또는 산신이 나들이할 때 타는 승물(乘物)로 위상이 격하된다. 위패는 폭 15㎝, 길이 40㎝쯤 되는 나무판에 ‘○○산신위’ 혹은 ‘○○산령위’라고 하여 산명을 기록하는 경우와 산명을 명기하지 않고 ‘산신위’ ‘산령위’라 적어두는 경우도 있다.
위패나 신상은 당우의 정면 중앙에 두며, 경우에 따라서는 신상 앞에 위패를 두기도 한다. 당우의 정면에는 산신당·산령각·산신각 등의 현판이 걸려 있고, 당우 안에는 산신제에 소용되는 제구(祭具)를 보관하기도 한다.
산신은 개인에게도 영향을 주지만 대부분은 동신(洞神)으로 마을공동체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산신제는 개인제가 아니라 마을 공동의 제사로 행해진다. 산신제는 한 해를 시작하는 정월에 거행되는 경우가 많고 제사의 시간은 초저녁 또는 새벽이다. 제의 방법은 제관을 중심으로 한 유교식이 많으며 제의 참여자들은 주로 마을의 안녕과 평안, 풍작을 기원한다.

5. 산신도 국립민속박물관 원본보기
이경우 신화라 하기도 그렇고,,, 설화라 하는것이 타당하겠죠?
산신은 위의 내용에 나오듯
에너미즘의 관념적 소산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단군께서(이분은 47대, 전조선의 마지막 어른) 아사달 산신이 되었다함도
인위적인 수호신으로의 변용을 의미하는겁니다.
호랑이가 산신이었다는것은 호환마마 ㅎ 의 영향 또한 적지 않았을겝니다.
사람을 잡아 먹으니 겁이 나고
그래서 신? 격화하여 빌게 되는것이 호랑이산신의 적나라한 실체임을 아십시다.
서양산신은 양복 입고 있겠습니다. 그려~
한길만 가면 된답니다.
道만 바라보고,,, 핏줄을 의지해서,,,
도줄은 수준이 있는겝니다.
그렇다고 다른 부류를 비하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는 안되는거에요.
역지사지 [易地思之] 해야 겠습니다.
20년경력의 기치료, 영치료의 名家
이화자연치유원 전통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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